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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대전의 골잡이 김은중(22)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이 5m 앞에 있는지, 3m 앞에 있는지 구별할 수 없다.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 거리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 그러나 김은중은 25일 막을 내린 2001 서울은행 FA(축구협회)컵 대회서 결승전 결승골을 포함해 4경기 연속골을 작렬하며, 소속팀 대전에 창단 첫 우승을 안겼다.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고, 득점왕(4골)은 덤이었다.
결승전 종료 휘슬이 울리자 김은중과 이태호 감독은 부둥켜안고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선수 시절 오른쪽 시력을 잃어버렸던 이 감독은 촉촉해진 두 눈으로 눈시울이 붉어진 제자를 쳐다봤다. “대견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경기 후 김은중은 “FA컵 결승전은 왼쪽 눈이 안 보인다는 게 알려진 뒤 치른 첫 경기라 부담스러웠지만, 집중력이 높아져 오히려 경기가 잘 풀렸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김은 “6학년 때 공에 왼쪽 눈을 맞아 처음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그땐 시력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동북중 3학년 때 다시 왼쪽 눈을 얻어맞으면서 시력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수술을 받았지만 97년 동북고 2학년을 중퇴하고 대전에 입단할 무렵엔, 왼쪽 눈으로 하프라인에서 골대를 볼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다. 98년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것도 왼쪽 눈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은중은 왼쪽 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티 내고 싶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 “축구를 못하는 건 실력 부족이지 눈 때문은 아닙니다. 눈이 동정이나 변명의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김은중은 훈련으로 눈의 약점을 보완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빠른 센터링을 처리하는 연습에 몰두했다. 김은 “2년쯤 훈련 하다보니 ‘감’이 생기더라”고 했다. 요즘 그는 쏜살같이 날아오는 패스를 ‘느낌’으로 때린다. 이태호 감독은 “은중이의 논스톱 슛은 다른 공격수들보다 타이밍이 정확하고 빠르다”며 “공의 거리감 느낌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고 했다. 선수 시절이던 87년 경기 중 오른쪽 눈을 차여 시력을 상실했던 이 감독은 “올 초 은중이의 왼쪽 눈이 안보인다는 걸 알았지만, 어린 마음에 상처 입을까봐 가만 있었다”고 덧붙였다.
1m84, 72㎏의 쭉 빠진 몸매에 유연성이 뛰어난 김은중은 98년 청소년대표에 뽑히면서 이동국(포항)과 함께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98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5골·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프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몸싸움과 헤딩슛이 약한 데다 무릎 부상이 겹치면서 ‘평범한’ 선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은중은 지난해 독일에서 부상을 완치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길러야 살아남는다”는 이태호 감독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면서 한 단계 성숙해졌다. 이 감독은 “(김은중에게) 골잡이는 온 몸으로 골을 넣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고 했다. 올 시즌 9골·5어시스트를 기록해 부활을 알린 그는 FA컵에서 흠 잡을 데 없는 기량을 과시했다. 김은중의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김은중은 ‘제1기 히딩크호’에 선발된 이후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서둘지 않는다. “월드컵에 나가고 싶지만 연연해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젊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신감이 배어 있었다.
안용현기자
justice@chosun.com
결승전 종료 휘슬이 울리자 김은중과 이태호 감독은 부둥켜안고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선수 시절 오른쪽 시력을 잃어버렸던 이 감독은 촉촉해진 두 눈으로 눈시울이 붉어진 제자를 쳐다봤다. “대견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경기 후 김은중은 “FA컵 결승전은 왼쪽 눈이 안 보인다는 게 알려진 뒤 치른 첫 경기라 부담스러웠지만, 집중력이 높아져 오히려 경기가 잘 풀렸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김은 “6학년 때 공에 왼쪽 눈을 맞아 처음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그땐 시력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동북중 3학년 때 다시 왼쪽 눈을 얻어맞으면서 시력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수술을 받았지만 97년 동북고 2학년을 중퇴하고 대전에 입단할 무렵엔, 왼쪽 눈으로 하프라인에서 골대를 볼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다. 98년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것도 왼쪽 눈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은중은 왼쪽 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티 내고 싶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 “축구를 못하는 건 실력 부족이지 눈 때문은 아닙니다. 눈이 동정이나 변명의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김은중은 훈련으로 눈의 약점을 보완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빠른 센터링을 처리하는 연습에 몰두했다. 김은 “2년쯤 훈련 하다보니 ‘감’이 생기더라”고 했다. 요즘 그는 쏜살같이 날아오는 패스를 ‘느낌’으로 때린다. 이태호 감독은 “은중이의 논스톱 슛은 다른 공격수들보다 타이밍이 정확하고 빠르다”며 “공의 거리감 느낌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고 했다. 선수 시절이던 87년 경기 중 오른쪽 눈을 차여 시력을 상실했던 이 감독은 “올 초 은중이의 왼쪽 눈이 안보인다는 걸 알았지만, 어린 마음에 상처 입을까봐 가만 있었다”고 덧붙였다.
1m84, 72㎏의 쭉 빠진 몸매에 유연성이 뛰어난 김은중은 98년 청소년대표에 뽑히면서 이동국(포항)과 함께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98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5골·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프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몸싸움과 헤딩슛이 약한 데다 무릎 부상이 겹치면서 ‘평범한’ 선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은중은 지난해 독일에서 부상을 완치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길러야 살아남는다”는 이태호 감독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면서 한 단계 성숙해졌다. 이 감독은 “(김은중에게) 골잡이는 온 몸으로 골을 넣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고 했다. 올 시즌 9골·5어시스트를 기록해 부활을 알린 그는 FA컵에서 흠 잡을 데 없는 기량을 과시했다. 김은중의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김은중은 ‘제1기 히딩크호’에 선발된 이후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서둘지 않는다. “월드컵에 나가고 싶지만 연연해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젊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신감이 배어 있었다.
안용현기자
justic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