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팀 출신들 엇갈린 명암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보자.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허정무 감독은 당시 "강하고 용맹한 팀을 만들겠다"며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을 대거 발탁했다.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 등이 그들이었다. 허감독 밑에서 2년간 조련받은 선수들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다. 결과는 2승1패를 거두고도 예선 탈락이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선수들은 이후 한국 축구를 책임질 든든한 재목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이들의 명암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히딩크 사단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은 '월드컵 4강 주역'으로 엄청난 신분 상승을 했다.



반면 끝내 히딩크의 부름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부러움과 아쉬움 속에 후일을 기약하고 있다.

김남일.박지성.이영표.설기현.이천수 등의 이름을 부를 때와, 이동국.고종수.박진섭.김도균.심재원 등을 떠올릴 때의 느낌은 얼마나 다른가. 국민적인 영웅으로 각광받으며 일부는 세계 유수의 클럽으로부터 영입 제의까지 받는 귀한 몸이 됐다. 그러나 낙오자는 좌절을 딛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희비가 가장 엇갈린 선수는 허정무 감독의 히트상품인 '좌영표 우진섭'이다. 왼쪽 윙백 이영표는 히딩크 감독의 든든한 신뢰 속에 포르투갈의 슈퍼 스타 루이스 피구를 맞상대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오른쪽 윙백 박진섭은 상무에 입대한 이후 기량이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축구팬들의 기억에서 지워져갔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남일과 김도균의 '역전 레이스'도 주목할 만하다. 김도균은 올림픽팀 주장으로 공.수를 조율하는 중책을 맡았었다. 반면 김남일은 김도균에 밀려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송종국은 주전들의 부상 공백을 메울 '대타'로 올림픽 팀에 선발됐지만 부상 때문에 호주땅을 밟지도 못했다.

올림픽팀의 수비진은 월드컵에서는 전멸했다. 골키퍼 김용대와 수비수 심재원은 막판까지 히딩크 사단에서 경합했지만 '30대 트리오(홍명보.최진철.김태영)'를 비롯한 선배들에게 밀렸다.

포워드 라인도 설기현만이 살아 남았다. 대신 박지성.이천수.최태욱 등 미드필더 요원들이 '멀티 플레이어'로 변신해 최전방으로 진출했다. 터줏대감이던 이동국.김은중.최철우 등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을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이들이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서 다시 만났다. 7일 개막 경기에서 박진섭과 박동혁이 골을 터뜨렸다. 다들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향한 새로운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올 K-리그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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