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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기생의 운명은 계속해서 물레방아다.
한양대 동기동창으로 국내 축구팬으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진공청소기’ 김남일(26·전남)과 ‘시리우스’ 이관우(25·대전)가 인생역전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둘 사이의 끝없는 희비 쌍곡선은 여전히 멈출 줄 모르고 또 다른 전기를 맞고 있다.
이번 아시안컵 2차예선을 앞두고 이들은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동반 승선했다. 그러나 대표팀의 중동원정을 통해 그동안 둘 사이를 수시로 왔다갔다한 무게중심이 다시 김남일에서 이관우로 옮겨지고 있다.
이관우는 코엘류 감독이 사령탑의 운명을 건 22일(한국시간) 오만전에 ‘친구’ 김남일을 체치고 중앙 미드필더로 전격 선발특명을 받았다.
대표팀이 약체 베트남에 1-0으로 충격패하자 코엘류 감독은 대표팀 전술운영의 새로운 해법카드로 이관우를 들고나온 것이다. 베트남전에서는 김남일이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 공수조율의 책무를 맡았지만 시원스러운 공격지원이 나오지 않았고 중앙수비수 김태영 조성환과의 유기적인 협력 수비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구상 변화다.
둘 사이의 우정과 경쟁 관계는 지난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은 그 해 한양대에 나란히 입학한 동기동창이다. 99년에는 한양대 숙소이탈사건을 도모한 ‘악동’들로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청소년 시절과 올림픽 팀에서는 이관우가 한국축구의 떠오르는 별로 먼저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97년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의 주력멤버로 출전했다.
그러나 쿠칭 참패를 겪으며 이관우의 시련은 시작됐다. 허정무호의 올림픽팀을 거친 뒤 부상으로 고생하는 사이 김남일이 히딩크호의 핵심멤버로 자리잡아 지난해 한·일 월드컵을 치르면서 일약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비록 미완성에 그쳤지만 해외진출 꿈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김남일의 귀국 후 이관우는 프로축구 올스타 최다득표자가 되는 등 경사를 맞으며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렸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한솥밥을 먹게 된 대표팀에서 우정의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무스카트(오만) | 류재규기자 jklyu@
* 이 기사는 스포츠서울의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