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그렇게 바뀔 것을….”

대구FC의 최진한 코치(42)는 최근 대전 시티즌의 공격수 공오균(29)을 보고 있노라면 비록 다른 팀의 선수지만 흐뭇한 마음뿐이란다.
오른쪽 발목 내측인대가 거의 끊어지는 부상으로 한동안 경기장에 나서지 못했던 공오균은 지난 8월31일 올시즌 1호골을 터트린 뒤 3경기 만에 2호골을 터트리며 J리그로 빠져나간 김은중(24)의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고 있다.
더욱이 공오균은 성실함까지 앞세워 공격은 물론 수비가담에 나서며 한층 성숙해진 플레이로 최윤겸 감독의 눈가에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이렇듯 되살아나고 있는 공오균을 최진한 코치가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이유는 바로 공오균이 최코치의 애제자(愛弟子)이기 때문이다.

최진한 코치와 공오균의 인연은 10년 전인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3년 부평고를 졸업한 공오균은 스카우트 파동을 겪으며 당초 울산대에서 관동대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
당시 관동대의 사령탑이 바로 현 대구FC의 최진한 코치였다.

그러나 대학시절 공오균은 최코치의 가슴을 많이 속상하게 했단다.
바로 거친 플레이와 어필 때문이었다.

최진한 코치는 “(공)오균이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너무 흥분을 잘해 주의시키는 데 애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지난 97년 드래프트 2순위로 대전 시티즌에 자리를 잡은 공오균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여전히 강한 판정불만과 보복행위로 심판들 사이에서 ‘요주의’ 선수가 되고 말았다.

이런 공오균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올시즌 최윤겸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부임 초 연습경기에서 공오균의 거친 플레이를 지켜본 최윤겸 감독은 당장 공오균에게 “또다시 그런식의 경기를 하면 경기에 못 나선다”는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부상까지 겹쳐 마음고생을 하는 동안 29살의 노장이 가야할 길을 깨닫게 됐다는 게 공오균의 말이다.

“(김)은중이도 빠졌는데 나라도 제 몫을 해야죠”라며 겸손해하는 그의 말에 어느 새 팀의 노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이영호 horn@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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