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아트홀에서 열린 Singing in the rain.
백현이의 첫 Musical.

지하철 역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홍보용 현수막부터 충무아트홀에도 도배된 곳곳의 백현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총총 공연장에 들어섰습니다.

치열한 예매 전쟁 끝에 겨우 얻은 2층의 자리는 생각보다 시야가 별로였습니다.
전문 공연장이라 기대한 것에 비해서 너무 높았고, 또한 앞 열은 난간에 가려서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다 8시가 되자 백현이의 목소리로 공연장 관람 예절에 대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또박또박 읽어내리는 백현이의 목소리는 왠지 의젓하여 제가 키운 건 아니지만, 부둥부둥 키운 자식이 학예회에서 발표할 때 절로 뿌듯해지는 그런 기분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

1부 (90분)

극이 시작되고, 대망의 백현이의 첫 대사!
....는 시작하자마자 난간 때문에 의자 끝에 앉아서 앞으로 쭉 빼고 앉아있던 자세가 점점 뒤로 물러나다 종국에는 의자에 엉덩이 깊숙하게 붙인 채 등받이에 딱 붙어서 두 손 꽉 쥐고 눈을 가리게 만들었습니다. 으아아아악!
발성도 그냥 백현이인데다가 누가 들어도 '나 연기하고 있어요~'에 대사마저 오글오글.
사실 제가 좋아하고 보아왔던 백현이는 그냥 이십대 초반의 까불까불한 남자애에다가 노래하는 EXO의 백현이라서, 어느 정도 더 나이가 있는 배역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자니 더 오글거렸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백현이의 연기에 전혀 흠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요.
이건 마치 감시자들 다람쥐 첫 등장 장면에서 '으악!'을 외쳤던 것과 같은 바로 그 기분!이었습니다. 

머리털 쥐어뜯게 만들었던 첫 대사를 지나 그 뒤로는 바로 적응하여 극을 즐겼습니다.
다만 내용 자체가 유명한 것이라 그런 것인지 장면 장면이 뚝뚝 끊기는 식으로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데다가 노래도 좀 적고, 긴장감이 없이 흘러가서 좀 지루한 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대 옆으로 각각 왼쪽에는 일본어 자막이, 오른쪽에는 중국어 자막이 보여졌습니다. 
다만 실제 대사 타이밍하고 정확하게 맞지 않고, 역시 번역의 한계로 말장난같은 건 잘 살지 아서 외국인들은 더 재미없겠구나- 했습니다.


공연 시작 전 걱정했던 것보다 백현이는 나쁘지 않은 연기를 이어갔습니다.
아무래도 노래 부분은 완전한 Musical 발성은 아니었습니다만, 노력했는지 생각보다 거슬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을 토로하자면, 다른 배우분들에 비해서 밀리는 감이 있다는 거.
어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시원하게 쭉쭉 들려오지 않아서 주고받고 할 때는 밀리는 느낌이고, 같이 부를 때는 주인공이니까 힘있게 들려오면 좋으련만 묻히는 감이 있었습니다. 

사실 심하게 거슬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긴 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노래는 후한 평을 주었지만, 대사는 아직 연습을 많이 해야겠더라구요.
생활 연기는 잘 할 것 같더라니 짧은 대사는 나름 괜찮았습니다. 특히 깐족거리는 대사나 복사기 대사는 발군! 하하하하.
긴 대사는 발성도 아직 안 되고, 경험이 없다보니 강약 조절이 제대로 안되어서 긴긴 대사를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르게 뱉어내는, 그냥 외운 걸 다다다다 말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1부 진행 동안 대사를 2번 씹었습니다. 얼른 고쳐서 다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처음 하는 Musical에 기합 빡! 들어간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1부 공연 하면서 점점 본인도 긴장이 풀렸는지 '연기하고 있음!'의 기운은 점점 사라져서 나중에 좀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사실 제가 백현이의 그 톤에 매우 빠른 적응을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사 전달이 아주 엉망이진 않았다는 것. 제일 걱정한 게 이 부분인데 대사든 노래든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더라구요.


배역 자체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 백현이가 다른 배우분들에 비해서 어린데다가 발성이 아직 그냥 변백현이다 보니까 배역에 비해 어리게 들려서 '돈 락우드'가 아니라 '백현이가 연기하는 돈 락우드'인 것이 자꾸 상기되어 몰입에 살짝 방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극의 내용 자체도 '스타의 사랑'을 다루다보니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백현이의 현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어서 더더욱 그랬습니다. 
백현이가 연기 천재도 아니고, '돈 락우드'를 연기하고 있어도 '백현'이가 보이니까요.
연애는 해도 밝혀지지 않길 바라는 것은 보여지는 것이 업인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의 일과 그 연애가 완전히 분리되어 별개로 보여지지 않는 이런 순간들 때문이지요. 
게다가! 심지어! 백현이도 연예인, 배역도 백현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되었겠지만 리나 라몬트에게는 '누나'라고 부르기까지 하니까 더더욱!

중간에 돈 락우드가 친구 코스모에게 대역을 부탁하며 겉옷을 건내고 친구가 그것을 입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상대 배우분이 옷을 입을 때 잘 안 들어가서 살짝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때, 재치있게 상대 배우분과 애드립으로 대사를 주고받았는데 그 상황이 재미있어서 객석도 웃었지만, 백현이는 상대 배우분의 대사에 진짜 빵 터진 것 같았습니다. '헤헤헷'하는 웃음이 연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

이미 사진으로 한바탕 웃어넘겼던 중간 삽입 영화의 콧수염 백현이(!)는 얌전하던 객석을 숨죽인 웃음 소리로 술렁이게 만들었습니다. 
웃긴 장면은 아니었는데 튀어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바로 그 장면!
1부 마지막은 Musical 제목과 동명인 'Singing in the rain'이었습니다.
좀 지루한 감이 있던 1부를 시원한 비 구경으로 달래주었지요. *_*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양의 비가 무대에서 내리고, 백현이가 그 유명한 넘버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과 함께 가로등 사이를 누비는 백현이는 초반 안무 중에 우산으로 벽을 쳐서 퍽 소리가 나는 작은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 뒤로는 무난하게 공연을 마쳤습니다.
발로 휙휙 바닥에 고인 물을 객석으로 날리는데 락우드라기엔 너무 개구져보이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행복한 기분에 빗 속에서 신나게 뛰어다녀야 하는데, 물 튀기기에 신난 개구장이가 된 락우드.....그래, 백현이 네가 신났으면 되었다(....)

다들 백현이를 앞에 두고도 참아왔던 환호성을 마음껏 질러대며 1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Intermission (20분)

긴 시간 집중한 몸의 피로를 덜어주고 1부의 여운을 곱씹을 수 있게 해주는 쉬는 시간!이어야 했으나, 경수가 백현이 응원하러 왔기에 약간 소란스러웠습니다.
어차피 2층이라 강건너 불구경이었습니다만, 쉬는 시간이 되니 2층에서도 난간에 다닥다닥 붙어서 나갔다가 들어오는 경수를 보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경수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너~무 작고 말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다가 다들 집중해서 보고, 찍기도 하고 하니 애가 죄지은 사람마냥 가리고 매니저한테 둘러싸여서 더 작게 느껴졌습니다.
그냥 공연을 보러 와서, 자리로 걸어들어가는 것 뿐인데 모두 집중하고 관찰하는 삶이란 어떤 기분일까.... 싶었습니다. 
시선을 받는 직업이긴 하지만 무대 위가 아닌 곳에서까지 너무 많은 시선이 노골적으로 집중되니까 그걸 보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기가 소진되는 느낌이어서...
위에서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데 한 번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1층 가운데 딱 보기 좋은 VIP 석을 예매 전쟁을 거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부러웠습니다!

2부 (50분)

재개된 2부.
1부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러워졌던 백현이의 대사는 쉬는 시간을 지나며 다시 긴장되었는지 책읽기로 살짝 돌아갔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공연을 하면서 나아지겠지요.
그리고 더 짧은 시간이지만 백현이가 대사를 씹는 횟수는 더 늘어났습니다. 급히 수정하기는 했지만, 그런 실수는 첫 공연인 오늘까지만이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숨죽여가며 관람하던 중, 극 중에서 돈 락우드와 캐시 샐든 간에 다음의 대사가 오고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돈 락우드: 사랑해. 나의 프리마돈나. 캐시, 얼른 이 작업이 끝났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에게 비밀이 없었으면 좋겠어. 리나에게도 말할 거고 모두에게도 말할 거야.
캐시 샐든: 그럼 당신의 팬들은요? 다들 실망할 거에요.
돈 락우드: 그럼 이 세상에서 신경써야 할 일은 당신 하나뿐이겠네.

으헉! 연기인 것은 알지만, 정말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이 대사를 쓴 것이 백현이 본인이 아니지만!! 
이 순간 Fan인 거 모두 다 알지만 얌전히 아닌 척 객석을 메우고 있던 모두들 '흡!'하고 숨 들이쉬는 게 너~무 느껴졌습니다.
진짜 가슴이 아파서 저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었는데 모두가 그러한, 조용한 가운데 술렁이는 분위기가 너무나 잘 느껴져서 슬픈 가운데 웃겼습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대사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네 마음, 내 마음 다 똑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술렁이던 그 순간이 왜인지 모르게 모르는 그 많은 분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지요.

1부부터 2부까지 전체적으로 안무가 다른 배우분들과 합이 잘 맞아야 하는 것들, 빠른 동작, 또 익숙하지 않은 탭댄스, 우산 돌리기나 던져서 받는 등 연습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는데 큰 실수없이 또 안무에만 집중한다는 느낌 없이 연기하면서 소화해냈습니다.
주인공이다보니 대사도 많고 노래에, 동선에, 안무에 외워야 할 것이 많았을텐데 턱없이 짧아보이는 연습기간에 좀 불안했는데 그래도 연습 열심히 했구나 싶어서 흐뭇했습니다.
절대적으로 엄청나게 잘했다고는 말 못하지만, Musical을 꿈꿔오고 계속 준비했던 친구도 아니고 갑작스런 캐스팅에 절대적인 시간 부족의 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Fan으로서 저는 전체적으로 만족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다가 콩깍지 백만겹 쓰여진 눈으로는 뭐, 귀엽기까지 하니까 더욱 흡족했구요.

역시 미리 공개되었던 하얀머리 가발은 달랑거리는 꽁지 머리가 귀엽기 그지없었습니다. 콧수염도 그렇고 하얀머리도 그렇고 극중 배우의 분장 모습일 때는 안 그래도 어려보이는데 더 어린 티가 나서 귀여우면서도 아쉬웠습니다.
좀 더 나이에 맞는 배역이었으면 좋았을텐데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백현이는 역시 참 좋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바지가 펑퍼짐한 느낌이라 안타까웠습니다. 다른 배우분들은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던데...T_T
그리고 생각보다 키가 안 작았어요! 컸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아니고...하하
중간에 하얀머리 가발 때는 장화가 굽이 꽤 있었지만, 탭댄스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도 비율도 좋고 늘씬한 느낌이어서 놀랐습니다.
계속 붙게되는 가까운 상대 배우분들도 다행히 크지 않아서 더더욱 안 작아 보였습니다!

Curtain call

다시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와 함께 Curtain call.


*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
코스모, 캐시 샐든과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백현이도 돈 락우드에서 '변백현'으로 돌아와서 형, 누나와 신나게 무대를 누볐습니다.

본 공연에서는 이렇게 많은 배우들과의 군무가 없었는데 Curtain call에서 군무를 보니 같이 합을 많이 못 맞춰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2층에서는 우산 때문에 간간이 백현이의 얼굴이 가려져서 아쉬웠지만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뻐졌습니다. *_*


전체적으로 Musical이 썩 재미있거나 훌륭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장면장면 웃긴 부분은 있어서 그럭저럭 긴 시간 버틸 수는 있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이야기는 잘 보는 편인데 그런 제가 전체적으로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음....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완급 조절이며 내용 전개는 별로였습니다. 
비 내리는 장면은 실내에서 그렇게 비 내리는 것을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 세게 쏟아져서 시원하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관객 입장을 떠나서 Fan인 입장에서는 극 자체가 썩 좋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백현이의 결과물이 동일하더라도 다른 모든 것이 훌륭한 경우에는 좋지 않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T_T 

백현이는 생각보다는 잘했고, 일단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좋았습니다! 사실 썩 큰 기대를 한 게 아니라서 후한 평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크게 실수하거나 매우 거슬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계속 이렇게 유지되면 안되겠지만 말입니다.
우선은 첫 공연이니까 여기까지. 

직업인으로 돈받고 공연하는 입장에서는 '배우의 모든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럭저럭'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니까 앞으로 진행되는 공연에서 발전되는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

그리고! 중간중간 돈 락우드에서 툭툭 발견되는 변백현은 귀여웠습니다.
어리고 개구진 돈 락우드! 하지만 아무래도 극 내용 상으로는 백현이가 맡기에는 좀 백현이 나이가 어리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캐스팅 중 제이가 가장 어울릴 것 같아서, 제이의 돈 락우드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1번 보고 났더니 내일도 보고 싶지만, 지갑과 체력이 걱정되므로 얌전히 있어야겠습니다.
돈 큥우드의 두 번째, 세 번째.... 앞으로의 공연을 응원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