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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훈련장 취재기
'누가 그들을 꼴찌라 말하는가.'
본격 레이스에 돌입한 2003 K-리그에서 '만년꼴찌' 대전 시티즌의 초반 돌풍이 거세다. 단 1승에 그친 지난해의 초라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대전은 26일 현재 3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당당히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팀 멤버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데다 구단의 궁핍한 살림살이도 그다지 나아지진 않았는데 말이다. 돌풍의 중심에는 최윤겸 신임감독이 서 있다. 최 감독은 대전을 자신감 넘치는 팀으로 탈바꿈시키며 팀의 상승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아울러 강도높은 훈련을 감내했던 선수들과 경기장 뒤켠에서 변치않는 성원을 보내는 팬들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 e매거진에서 대전 돌풍의 숨은 주역 서포터들과 함께 최 감독과 선수들을 찾아가 하룻동안 밀착데이트를 했다.

# 재미가 없으면 축구가 아니다
지난 23일 오후 3시 대전 유성구 노은동에 위치한 지족중학교 실내체육관. 이날은 공교롭게도 비가 내려 대전 선수들은 이곳 실내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드넓은 그라운드가 아닌 좁은 중학교 실내체육관이 답답할 만도 했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그늘진 얼굴을 찾아볼 순 없었다.
올 시즌부터 주장을 맡은 골키퍼 최은성 선수는 "지난 시즌에는 워낙 성적이 좋지 않아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올핸 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후배들과 웃으며 공을 찰 수 있어 기분이 무척 좋다"며 미소지었다. 그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지켜보던 최윤겸 감독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축구가 정말 좋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래야 경기장에서도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지난 동계훈련때부터 항상 웃으며 즐겁게 훈련에 임했던 게 우리 팀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말 그대로 재미를 느껴야 축구 실력도 배가된다는 얘기다.

# 감독-선수-서포터 '3색 토크'
대전은 '시티즌'이라는 명칭답게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구단이다. 다른 구단에 비해 주머니가 가벼운 탓에 선수 선발 및 재정 확보 등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구단사랑은 12개 구단 통틀어 가장 유별나다. 대전축구단의 중심이 되는 서포터들과 최윤겸 감독 그리고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부담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1. 대전 폭풍질주 '진원지를 찾아라'
아니나 다를까 3자대면한 자리에서는 대전의 초반 돌풍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서포터들은 지난 시즌에는 대전 선수들에게 솔직히 실망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올시즌 K-리그가 개막되면서 대전 선수들에게서 뭔가 특별한 점을 느꼈다고 했다. 선수들의 눈이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다. 또 '역전패의 명수(?)'라는 오명을 씻어내고 더욱 열심히 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친 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포터들의 말이 끝나자 잠자코 있던 최 감독이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적자로 운영되는 시민구단에 이렇게 큰 성원이 끊이지 않을까요? 대전은 참으로 복 받은 구단이예요. 그렇기에 우리들은 더욱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지요."
한편 선수들은 팀의 승리 공식은 모두 최 감독으로부터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간판 골잡이 김은중 선수는 "최 감독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선수들을 하나로 모았다. 게다가 그만의 뛰어난 전술이 더해지면서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그러자 최 감독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아마도 선수단 숙소 뒤편에 묘자리가 하나 있는데 그 조상님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다"라며 쑥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주장인 최은성 선수가 "작년에 1승 밖에 거두지 못하며 부진했을 때에는 그 묘자리 탓을 많이 했어요"라고 말해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결국 감독과 서포터들 그리고 선수들은 서로에게 공을 돌리다 '우리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뤄낸 성과이지 않겠느냐'고 결론지었다.
2. 대표팀보다 소속팀 활약이 중요해!
서포터들은 매스컴에도 자주 등장한 김은중 선수의 코엘류호 합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최 감독은 "김은중은 능력이 있는 선수다. 대표팀에서도 분명히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김은중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솔직히 언론의 보도는 부풀려지는 경우가 많다. 기회가 오면 열심히 하겠지만 현재로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속팀을 좋은 성적으로 이끄는 것이다"라며 "소속팀 주전 자리도 위험한데 대표팀 원톱을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3. 대전 최고 바람둥이는 누구?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전은 꽃미남 선수들이 많은 구단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누가 가장 끼가 많을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수는?'이라는 질문이 단골메뉴로 등장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대전 선수들은 곤란한 질문을 재치있는 대답으로 빠져나오곤 했다. 이날도 여지없이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단 대화의 서두에서는 대전 최고의 꽃미남 이관우 선수에 관한 질의가 먼저 쏟아졌다. 마침 이 선수가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느라 자리를 비운 터라 최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서포터들 모두가 눈치를 보지않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모두들 '최고의 바람둥이는 이관우'라고 결정을 지으려는 순간 갑자기 의외의 복병이 등장했다. 최 감독이 "호드리고가 한국말을 좀 더 배우면 여자에게 인기가 많을텐데…"라고 말을 꺼낸 것이다. 그러자 선수들과 서포터들은 "호드리고가 외모도 준수하고 스타성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거들어 곧바로 최고의 바람둥이는 호드리고가 됐다.
4. 서포터는 아내와 같다
3색토크가 막바지에 이르자 서로에게 바라는 점들을 주고받았다.
먼저 서포터들이 당부의 말을 전했다. 대전 서포터스 77년생 모임 '뱀사골' 회장이라고 밝힌 김태광씨는 "서포터스들은 아내와 같다. 돈 많이 벌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멋지고 든든한 모습을 더 원한다"며 "경기에서 져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 골뒷풀이는 프로구단 중 가장 화끈하게 보여주길 바란다"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이에 선수들과 최 감독은 "다음 경기부터 화끈한 골뒷풀이를 보여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가끔씩 너무 지나치게 상대방을 비하하는 응원은 삼가해 달라. 그렇게 하면 원정에서 우리도 똑같이 당하고 만다"고 당부했다.

# '꼴찌의 반란'은 계속된다!
서포터-감독-선수들 간의 진솔한 대화가 끝나고 모두에게 '올 시즌 최종목표'에 대해 물었다.
선수들과 서포터들은 대체로 4강권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올 시즌 전남에서 이적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종현 선수는 "현재 분위기를 계속 이어간다면 상위권 진입도 문제가 없다. 열심히 노력해서 대전이 더 이상 꼴찌가 아니라는 사실을 팬들에게 알려주겠다"고 강조했다.
최 감독은 "우리 팀의 멤버들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현재 우리가 보유한 전력을 유지하면 6-7위권은 문제 없다. 초반에 잘하고 있지만 자만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질 경기는 지더라도 매경기 화끈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대전 | 스포츠서울닷컴 심재희기자
kkamanom@sportsseoul.com
'누가 그들을 꼴찌라 말하는가.'
본격 레이스에 돌입한 2003 K-리그에서 '만년꼴찌' 대전 시티즌의 초반 돌풍이 거세다. 단 1승에 그친 지난해의 초라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대전은 26일 현재 3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당당히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팀 멤버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데다 구단의 궁핍한 살림살이도 그다지 나아지진 않았는데 말이다. 돌풍의 중심에는 최윤겸 신임감독이 서 있다. 최 감독은 대전을 자신감 넘치는 팀으로 탈바꿈시키며 팀의 상승세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아울러 강도높은 훈련을 감내했던 선수들과 경기장 뒤켠에서 변치않는 성원을 보내는 팬들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 e매거진에서 대전 돌풍의 숨은 주역 서포터들과 함께 최 감독과 선수들을 찾아가 하룻동안 밀착데이트를 했다.

# 재미가 없으면 축구가 아니다
지난 23일 오후 3시 대전 유성구 노은동에 위치한 지족중학교 실내체육관. 이날은 공교롭게도 비가 내려 대전 선수들은 이곳 실내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드넓은 그라운드가 아닌 좁은 중학교 실내체육관이 답답할 만도 했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그늘진 얼굴을 찾아볼 순 없었다.
올 시즌부터 주장을 맡은 골키퍼 최은성 선수는 "지난 시즌에는 워낙 성적이 좋지 않아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올핸 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후배들과 웃으며 공을 찰 수 있어 기분이 무척 좋다"며 미소지었다. 그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지켜보던 최윤겸 감독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축구가 정말 좋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래야 경기장에서도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지난 동계훈련때부터 항상 웃으며 즐겁게 훈련에 임했던 게 우리 팀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말 그대로 재미를 느껴야 축구 실력도 배가된다는 얘기다.

# 감독-선수-서포터 '3색 토크'
대전은 '시티즌'이라는 명칭답게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구단이다. 다른 구단에 비해 주머니가 가벼운 탓에 선수 선발 및 재정 확보 등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구단사랑은 12개 구단 통틀어 가장 유별나다. 대전축구단의 중심이 되는 서포터들과 최윤겸 감독 그리고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부담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1. 대전 폭풍질주 '진원지를 찾아라'
아니나 다를까 3자대면한 자리에서는 대전의 초반 돌풍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서포터들은 지난 시즌에는 대전 선수들에게 솔직히 실망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올시즌 K-리그가 개막되면서 대전 선수들에게서 뭔가 특별한 점을 느꼈다고 했다. 선수들의 눈이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다. 또 '역전패의 명수(?)'라는 오명을 씻어내고 더욱 열심히 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친 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포터들의 말이 끝나자 잠자코 있던 최 감독이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적자로 운영되는 시민구단에 이렇게 큰 성원이 끊이지 않을까요? 대전은 참으로 복 받은 구단이예요. 그렇기에 우리들은 더욱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지요."
한편 선수들은 팀의 승리 공식은 모두 최 감독으로부터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간판 골잡이 김은중 선수는 "최 감독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선수들을 하나로 모았다. 게다가 그만의 뛰어난 전술이 더해지면서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그러자 최 감독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아마도 선수단 숙소 뒤편에 묘자리가 하나 있는데 그 조상님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다"라며 쑥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주장인 최은성 선수가 "작년에 1승 밖에 거두지 못하며 부진했을 때에는 그 묘자리 탓을 많이 했어요"라고 말해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결국 감독과 서포터들 그리고 선수들은 서로에게 공을 돌리다 '우리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뤄낸 성과이지 않겠느냐'고 결론지었다.
2. 대표팀보다 소속팀 활약이 중요해!
서포터들은 매스컴에도 자주 등장한 김은중 선수의 코엘류호 합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최 감독은 "김은중은 능력이 있는 선수다. 대표팀에서도 분명히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김은중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솔직히 언론의 보도는 부풀려지는 경우가 많다. 기회가 오면 열심히 하겠지만 현재로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속팀을 좋은 성적으로 이끄는 것이다"라며 "소속팀 주전 자리도 위험한데 대표팀 원톱을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3. 대전 최고 바람둥이는 누구?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전은 꽃미남 선수들이 많은 구단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누가 가장 끼가 많을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수는?'이라는 질문이 단골메뉴로 등장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대전 선수들은 곤란한 질문을 재치있는 대답으로 빠져나오곤 했다. 이날도 여지없이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단 대화의 서두에서는 대전 최고의 꽃미남 이관우 선수에 관한 질의가 먼저 쏟아졌다. 마침 이 선수가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느라 자리를 비운 터라 최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서포터들 모두가 눈치를 보지않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모두들 '최고의 바람둥이는 이관우'라고 결정을 지으려는 순간 갑자기 의외의 복병이 등장했다. 최 감독이 "호드리고가 한국말을 좀 더 배우면 여자에게 인기가 많을텐데…"라고 말을 꺼낸 것이다. 그러자 선수들과 서포터들은 "호드리고가 외모도 준수하고 스타성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거들어 곧바로 최고의 바람둥이는 호드리고가 됐다.
4. 서포터는 아내와 같다
3색토크가 막바지에 이르자 서로에게 바라는 점들을 주고받았다.
먼저 서포터들이 당부의 말을 전했다. 대전 서포터스 77년생 모임 '뱀사골' 회장이라고 밝힌 김태광씨는 "서포터스들은 아내와 같다. 돈 많이 벌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멋지고 든든한 모습을 더 원한다"며 "경기에서 져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 골뒷풀이는 프로구단 중 가장 화끈하게 보여주길 바란다"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이에 선수들과 최 감독은 "다음 경기부터 화끈한 골뒷풀이를 보여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가끔씩 너무 지나치게 상대방을 비하하는 응원은 삼가해 달라. 그렇게 하면 원정에서 우리도 똑같이 당하고 만다"고 당부했다.

# '꼴찌의 반란'은 계속된다!
서포터-감독-선수들 간의 진솔한 대화가 끝나고 모두에게 '올 시즌 최종목표'에 대해 물었다.
선수들과 서포터들은 대체로 4강권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올 시즌 전남에서 이적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종현 선수는 "현재 분위기를 계속 이어간다면 상위권 진입도 문제가 없다. 열심히 노력해서 대전이 더 이상 꼴찌가 아니라는 사실을 팬들에게 알려주겠다"고 강조했다.
최 감독은 "우리 팀의 멤버들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현재 우리가 보유한 전력을 유지하면 6-7위권은 문제 없다. 초반에 잘하고 있지만 자만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질 경기는 지더라도 매경기 화끈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대전 | 스포츠서울닷컴 심재희기자
kkamanom@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