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일은 아주 예민하다. 무심한 듯 보이는 태도지만, 사실은 작은 변화도 금세 알아차릴 만큼 예민핟.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듯한 표정과 혼자 상념에 빠져 눈동자는 늘 꿈을 꾸는 듯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미지일 수도, 아니면 그를 제대로 파악한 것일 수도 있다. 두 번을 만났찌만 두 번 모두 각기 다른 두 가지 모습으로 다가왔던 건일에게 에디터는 <도쿄타워>의 오다기리 조를 맡겼다. 방랑벽과 예술가 기질, 그리고 방황과 슬픔 등 청춘의 온갖 것들을 고스란히 감내하던 영화 속 마사야의 모습과 왠지 모르게 건일이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GEON IL,

SENSITIVE TO NATURE


건일, 예민한 생명체
<도쿄타워>의 오다기리 조를 재현하다





건일은 말한다.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만을 이야기한다고. "사람들이 아는 건 이런 거예요. 겨울이면 강물이 얼잖아요. 그런데 얼어있는 건 표면뿐이죠. 얼음 아래로는 여전히 차가운 강물이 흐르고 있죠. 유유자적하게. 사람들은 강물이 얼었다고 얘기하죠. 그 밑에 흐르는 강물은 보지 못한 채 말이에요.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제 모습은 그 표면의 얼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다면 이제 에디터가 알아내야 할 분명한 개체가 생겼다. 얼어붙은 표면 아래 흐르는 강물의 존재를 밝히는 일, 그것은 것일은 알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건일은 <도쿄타워>의 오다기리 조의 모습에 투영시켜 그 존재를 낱낱이 파헤쳐 보리라.

★ 사람들은 모두 나의 내면은 못 보죠
건일은 자신의 모습을 한 번 굴절시켜 사람들에게 내민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실제 모습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하지 못한다. 떄문에 굉장히 밝고, 명랑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는 주변의 평가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옳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그른 것이다.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아는 사실들은 비로소 제가 입을 열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때죠."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외유내강이거나 내유외강이라는 것.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여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여려 보이지만 속으로는 강한 사람이 있단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실제 모습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모습과는 반대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건일은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을까. "한때 싸이코로 소문이 나기도 했어요(웃음). 워낙 기분의 격차가 심한 나이였으니까요.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되는 그런 시절이었죠."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통제하기 힘들게 만들었던 것인가. 혹 벗어나고 싶은 어떤 굴레가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때는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전 수시로 대학에 합격을 하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지냈죠. 남은 네다섯 달을 무엇 하며 보내야 하나 생각하니 우울하기 그지 없었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가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이루고 나니 목표를 잃어버린 꼴이 되고 만 셈이었어요. 겨우 이거 하나 때문에 12년이라는 세월을 학교에서 보낸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죠."

★ 참을 수 없는 삶의 변화 과연 당신에게 참을 수 없는 무엇이 있다면 그게 어떤 것일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골똘히 생각에 빠지더니 드디어 입을 연다. "골똘히 생각을 해 보아도 쉽게 무언가 얘기하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아닐까 싶어요. 진짜 참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경험을 한 적은 없지만요." <도쿄타워>에서 마사야는 어느 날 갑자기 미술 공부를 하겠다고 떠나더니만, 원대한 꿈과 달리 빚만 쌓여 가는 현실을 맞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조금씩 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변화는 거듭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건일의 삶에는 어떤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어떤 것이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가. "모든 건 변한다고 생각해요. 생각이며 마음가짐까지도 모두요. 변하지 않는 건 신앙 정도라고 생각하죠." 그는 이렇게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이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했단다. "중학교 때 좋아하던 여자 아이가 있었어요. 미소가 너무 아름다운 그런 아이였어요. 고백을 하려고 수 차례 망설이다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결심을 했죠. 장미꽃을 사 들고 그 친구의 반으로 갔는데 보이질 않는 거예요. 알고 보니 바로 전날 전학을 간 거였어요. 정말 영화 같죠? 그리고 2년이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우연히 그 아이를 보게 되었죠. 하지만 제가 알던, 미소가 아름다운 아이 대신 타락한 사람이 되어 있었죠. 그 날 전 진짜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그 날의 상처가 쉽게 잊혀지지 않아 누군가를 쉽게 좋아할 수 없게 되었죠." 이제 쉽게 사랑할 수 없게 될 것 같다는 그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 순간 마음이 먹먹해져 옴을 느꼈다. 사랑은 사람 사이의 나눔이고 베푸는 것이라 말하는 따뜻한 마음의 건일이 하루 빨리 좋은 사랑을 하게 되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 모든 영화는 행복을 이야기한다 모든 영화는 어쩌면 한 가지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바로 행복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사랑을 통해 행복을 얻고, 가족 때문에 행복을 깨닫고, 잃음으로써 행복의 존재를 알아 채는 그런 반복의 연속이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임을 나이가 든 후에야 알게 되었다. <도쿄타워>의 주인공 마사야도 어머니의 암 투병 시기 잠깐 찾아온 행복을 놓치지 않고 찰나의 순간을 경험하지 않던가. "전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다면 건일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하겠는가. 뻔한 대답은 사양하겠노라고 마음 먹은 에디터 앞에서 건일은 제 속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 "아직은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괴리감이 있기 때문이죠. 뭐든 일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당신은 어떤가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일치하고 있나요?" 자신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에디터에게 반문을 하더라. 그래도 지난 번 씨야의 '미친 사랑의 노래' 뮤직 비디오를 보는데 이 일 하기를 잘 했다는 보람이 느껴졌단다. 잠시 에디터는 뒷통수를 얻어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괴리감을 이야기할 줄은 몰랐기 때문. 하지만 무대 위에서의 그는 충분히 아름다웠으며 또 매 무대마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만으로도 행복의 필요조건 정도는 갖추고 있지 않나 싶다.

건일은 하늘을 날고 싶다고 한다. 아직도 비행기를 타면 신기하고 흥분되는 기분을 주체할 수 없다고. 그래서 가슴 속에 꿈을 하나 품었다고 이야기한다. 언젠가 비행학교에 들어가 파일럿이 되는. 그 꿈을 일룰 수 있을지 아니면 꿈으로 그칠 지는 지금 무어라 말할 수 없을 테지만, 항상 그렇게 하고 싶은 무언가를 품고 있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대 위에서 비상하게 될 그, 언젠가 푸른 하늘을 날게 될 그를 떠올려 본다.